현재 한국에서 살고 있는 반달곰은 지리산 부근에 많아야 다섯 마리 정도로 추정된다. 이대로라면 10～20년 후엔 한국 반달곰은 멸종될 것으로 보인다. 쑥 한줌과 마늘 20개로 100일을 버텨 인간으로 변했다는 웅녀의 신화가 무색할 지경이다. 일제시대 무분별한 벌채로 비롯된 야생동물의 멸종위기는 이젠 ?무차별 보신주의?로 인해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환경부는 지난해 2월부터 사육곰의 새끼를 훈련시켜 야생에 방사하는 토종 반달곰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SBS의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쓴 책은 그 첫 번째 복원시도를 기록하고 있다. 장군이와 반돌이, 반순이, 그리고 막내. 이 네 마리의 곰은 8개월의 야생 적응훈련을 거쳐 지난해 9월 지리산에 방사됐다. 종족 복원의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야생의 전쟁터로 나선 선발대인 셈이다. 과연 그들은 밀렵꾼의 올무와 덫이 사방이 널려 있는 산에서 배고픔과 외로움을 견뎌내고, 자연의 품에 안겼을까.책은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드라마틱하다. 개성강한 형제자매들처럼 성격이며 기질이 제각각인 4마리 곰들이 사육장을 벗어나 본연의 야생세계로 들어가는 모험담이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흥미진진하다. 곰들이 야성을 되찾는 과정은 대견하고, 곰의 영리함에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야생훈련장에 촬영을 위해 설치한 망루를 점거하는가 하면, 2m가 넘는 높이에 고압전류까지 흐르는 울타리를 넘어 외출하는 곰들의 지혜 앞에서는 누가 곰을 미련하다고 말했나 싶다. 책의 절정은 진정 곰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데 있다. 훈련을 마친 곰들을 야생으로 떠나보낼 때 복원팀이 느낀 감정은 자식을 떼어놓고 돌아서는 부모에 못지 않을 터. 곰들을 위해 모질게 돌아선 복원팀의 마음이 사뭇 애절하다.그런데 왜 꼭 반달곰을 산으로 보내야 하는 걸까. 반달곰이 산에 없어도 큰 지장은 없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복원팀은 뭐라고 답할까. 별명이 ‘숲의 관리자’인 곰은 숲을 울창하게 하고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시켜 결국은 환경을 살린다. 훌륭한 대답이다. 그런데 저자들은 단지 이렇게 말한다. “곰은 산에 살고, 산은 곰이 필요하다.” 스스로 그러하게 한다는 뜻의 자연(自然)의 의미가 되새겨지는 대목이다.한 종의 멸종은 단지 그 종의 문제가 아니라 마치 한 올만 잘못돼도 줄줄이 풀리는 스웨터처럼 전체 생태계를 위협한다는 것, 파괴된 생태계는 결국 상상이상의 천재(天災)로 인간에게 되돌아올 것이라는 경고가 새삼 피부에 와닿는다.한편 장군이와 반돌이, 반순이와 막내는 방사후 어떻게 됐을까. 사람들의 정을 잊지 못한 막내는 야생 적응에 실패해 사육장으로 돌아왔고, 반순이는 밀렵꾼의 올무에 걸려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이제 첫걸음을 내디딘 반달곰 복원 프로젝트는 ‘절반의 실패’가 아니라 ‘절반의 성공’이다.--- 문화일보 북리뷰 이수진 기자 (2002년 12월 27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