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slide
살림출판사가 출판한 책 현재 2,496  
살림출판사홈 > 살림의 책 > 브랜드별 도서
청일전쟁 - 근대 동아시아 문제의 기원 (살림지식총서 530)
이성환 지음 | 2021년 6월 28일
브랜드 : 살림지식총서
쪽수 : 200 쪽
가격 : 6,800
책크기 : 120*190
ISBN : 978-89-522-4299-0-04080
• Home > 브랜드별 도서 > 살림지식총서
• Home > 분야별 도서 > 인문사회
• Home > 시리즈별 도서 > 살림지식총서
청일전쟁은 중국과 일본만의 일이었는가
타자의 영역으로 인식되던 전쟁을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일본이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본격적으로 한국에 침투하게 된 계기,
청일전쟁은 한국사에서 어떤 의미인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두 전쟁이 벌어졌을 때 한국은 당사국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반도는 두 전쟁의 직접적인 전장이었다. 그 결과 한국의 국운도 바뀌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이 전쟁들에 대한 인식이 깊지 않다. 두 전쟁을 우리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연구도 충분하지 않다. 청국과 일본,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 즉, ‘타자들의 전쟁’이라는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시선은 어떠할까. 당시의 외무대신(외상) 무쓰 무네미쓰는 일본은 당시 청일전쟁이 “조선 정부의 의뢰를 받아 조선을 위해 청군을 국경 밖으로 구축”하여 일어났으며, “청일 양국 간에 문제로 되어 있던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종속(종주권) 논쟁이 그 주된 원인”이라고 말했다. 시모노세키조약과 조일수호조규에서 조선이 독립 자주국임을 확인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근대 국제 체제가 도입된 이 시기에는, 형식적으로 모든 국가가 자주국으로 취급된다. 즉 ‘정상적인’ 국가 간 조약에는 이러한 규정이 없다. 조선이 자주국이 아닌 면이 있음에도 그것을 부정하고 자주국으로 취급하려는 목적에 따라 붙은 내용이다. 일본은 이를 조선을 위한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조선은 일본에 독립을 보장해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또 일본에 조선을 독립시켜야 할 권리나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로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까닭이 조선의 독립에 있었다면, 조선이 청과의 관계를 끝내고 청국군이 한반도에서 완전히 철수한 시점에서 전쟁을 끝내야 했다. 하지만 일본은 만주를 점령하고, 베이징을 위협하고, 강화조약에서 랴오둥반도와 타이완을 할양받았다. 청국의 종주권을 부정하고 베트남을 독립국으로 승인한 프랑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베트남을 식민지화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일본에서 ‘조선의 독립’은 곧 식민지화를 의미했다.
결국 청일전쟁은 침략주의의 발로였다. 1871년 타이완 출병에서 시작되어, 1894년 청일전쟁을 통해 본격화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함으로써 종결된 것, 그것이 일본의 침략주의다. 그런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타자들의 전쟁’이라는 시선에서 보는 게 옳은 것일까?
청일전쟁은 동아시아 국제 질서에 본질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전통적으로 맹주 역할을 했던 중국에 승리한 일본은 강자로 부상했고, 일본 중심의 제국주의 지배 질서를 보편화해갔다. 그러나 서구 열강이 압박을 가하는 이른바 삼국간섭이 일어나고, 일본 주도의 내정 개혁은 중단되는 등 일본 중심의 신질서는 그 한계가 뚜렷했다. 또한 동학 농민군, 즉 조선의 민중들은 반일본적 태도를 분명히 했다. 그렇다면 청일전쟁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는가. 왜 조선과 일본은 왜 10년 후 꼭 같은 전쟁(러일전쟁)을 되풀이했는가.
현대 각 나라 간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청일전쟁은 동아시아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큰 사건 중의 하나다. 하나하나 쌓여온 이 흐름이 지금, 가까운 나라에도 먼 나라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청일전쟁은 청국(중국)과 일본만의 일이었는가. 타자의 영역으로 분리되던 것들이 실은 우리에게 어떤 중대한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는 일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가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 의미 역시도 묻는다.
프롤로그 – 일본의 전쟁 DNA와 ‘승리 중독’

1. 서구에 굴복하고 조선을 정복하라
2. 청국과 일본은 대등하다
3. 청국과 일본 틈새의 조선
4. 청일 양국군, 조선에서 물러나다
5. 조선과 청국은 나쁜 친구: 일본의 전쟁 논리
6. 조선에 출병하라: 청일전쟁의 도정
7. 누구를,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8. 일본은 진보주의의 전사다: 청일전쟁
9. 이제는 조선의 개혁이다
10. 베이징이 위험하다
11. 이 정도는 각오했다: 시모노세키조약
12. 일본의 진정한 적은 러시아다

에필로그 – 왜 역사를 반복할까

참고문헌
청일전쟁은 러일전쟁이라는 또 다른 전쟁을 불러왔다. 두 전쟁은 원인, 전개 과정, 결과 등 모든 면에서 매우 유사하다. 한국은 이 두 전쟁의 당사국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반도는 두 전쟁의 직접적인 전장이었으며, 그 결과 한국의 국가 운명도 바뀌었다. 우리가 이 전쟁들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다. _9쪽

다음 해 4월, 사다 하쿠보 일행은 정부에 「조선국 교제 시말 내탐서(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라는 보고서를 제출한다. 내탐서는 조선이 과거 통신사를 파견하고 예를 갖춘 이유, 조선과 쓰시마 사신의 왕래 예법, 조선 입국 때 허가를 받은 이유 등 외교 관례와 조선 육·해군의 시설과 장비 실태, 서울 근해의 항구, 조선과 러시아의 관계 등 13개 항목을 정리하고, “조선과 관계 수립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동시에 그들은 별도로 “조선은 황국을 멸시하고 불손한 문자로 치욕을 주고 있다. …… 반드시 조선을 정벌하지 않으면 천황의 위엄이 서지 않는다”는 내용의 건백서를 제출한다. 조선의 실정을 살펴보니 정벌이 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정한론의 시작이다. _19쪽

후쿠자와의 위와 같은 관점은 메이지유신 이전에 친서구적이며 아시아에 대한 침략주의 사상을 전파한 요시다 쇼인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 요시다의 아시아 침략주의가 정한론과 타이완 정벌로 현실화했다면, 후쿠자와의 탈아론은 조선 침략과 청일전쟁으로 연결된다. 그가 청일전쟁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과적으로 그가 주장한 개화=서구화는, 그가 청일전쟁 때에 적나라하게 보여준 대로, ‘문명국’ 일본이 문명화하지 못한 조선과 청국을 침략하는 것을 정당화하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근대 일본의 문명개화와 아시아 침략주의는 동전의 양면이다. 일본이 근대화로 나아가면서 아시아 침략 전쟁의 길을 걷는 이유다. _65~66쪽

한반도를 매개로 한 일본의 위협 인식은 거꾸로 한반도가 일본 안전의 방파제라는 발상을 낳았다. 한반도에 적대적이거나 위협적인 세력이 존재하지 않으면 일본은 안전하다는 것이다. 여몽 연합군의 일본 정벌이라는 역사적 피해의식이 야마가타에 이르러 이익선 개념으로 이론화·표면화한 것이다. 나아가 이는 일본의 안전을 위해 조선을 보호국화·식민지화할 수밖에 없다는 자기합리화 기제를 만든다. _72~73쪽

일본의 내정 개혁을 거부한 조선 정부는 결국 일본에 점령된 후에 개혁을 추진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은 일본의 요구에 부응하는 ‘친일적’ 성격을 가지고, 외부적으로도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게 된다. 군국기무처는 일본에 보빙사를 파견하고, 일본에게 전권대사를 파견해줄 것을 요청하는 등의 결의를 하면서 친일본적 자세를 보였다. 개혁이 민중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이유의 하나다. _130~131쪽

만약 직예 작전이 중지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전쟁은 훨씬 길어지고, 전쟁의 양상도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전쟁은 이홍장의 북양군과 일본 사이의 국지전적(한정적)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일본이 직예 작전을 통해 수도 베이징을 위협하면, 지금까지의 한정적 성격의 전쟁이 청(중국)과 일본의 전면전으로 비화한다. 또 이권 확보를 위해 청국 정부의 붕괴를 우려하는 열강의 간섭 가능성이 커지면서, 일본은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었을 것이다. 일본의 승리도 장담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때 이른 강화 성립이 일본을 구한 것이다. _1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