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 새빨간 과학

 

한 공기업 방송광고에 소년이 오렌지에 금속을 꽂아서 전기를 얻는 장면이 나온다. 소년은 오렌지를 반으로 잘라 두 개의 금속 조각을 꽂은 뒤 전선과 꼬마전구를 연결한다. 이렇게 하면 금속 조각이 (+)극과 (-)극의 역할을 하면서 전류가 흐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게 가능할까?

 

흔히 볼타전지라고 하는 ‘볼타 전퇴’는 금속을 소금물에 적신 종이 사이에 끼워 넣은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광고에서 만든 소년이 만든 전지도 원리상 볼타 전지와 같다. 볼타전지는 어떤 금속을 사용하는지에 의해 전압이 결정되는데, 아연과 구리를 사용했다면 약 0.9V 정도의 전압과 0.2mA정도의 전류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레몬이나 오렌지를 매개로 3개 정도를 연결했을 때 겨우 다이오드(전자현상을 이용하는 단자소자)를 켤 수 있을 정도다. 광고처럼 개집을 밝힐 정도로 밝은 빛을 얻을 수는 없다.

 

치킨 가게나 돼지고기 상표, 쇠고기 상표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한결같이 웃는 표정이다. 마치 즐겁게 자신을 잡아 먹어달라고 호소하는 듯하다. 이렇게 동물들이 웃는 모습을 하는 것은 동물을 죽이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혐오감을 없애고자 함이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광고에 노출된다. 모든 광고 콘텐츠는 교묘하게 편집돼 있다. 내가 최고라고 띄우기도 하고 나를 응원하기도 한다. 때로는 질병, 사고 등을 부각시키며 겁을 주기도 한다. 반드시 사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별 의심도 없이 광고 내용을 받아들인다. 그 이유는 광고의 현란한 이미지와 자극적인 문구, 효과음 등이 비판적 사고를 하는 뇌의 특정 부위를 교란시키기 때문이다.

 

<새빨간 과학>은 이처럼 과학으로 위장한 광고를 다시 보게 한다. 광고를 일단정지시키고 ‘과학의 눈’으로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광고에 무기력해진 뇌를 깨워 과학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도록 돕는다. 광고의 새빨간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자 하는 개인과 사회에 유용한 책이 될 것 같다.

 

최원석 글, 이부용 그림. 살림/9800원.

 

박창섭 기자 / 한겨레신문

[쿠키 문화] 과학은 딱딱하고 어려운 것일까? 중학교 과학교사인 저자 최원석씨는 ‘NO’라고 외친다. 그동안 ‘영화 속에 과학이 쏙쏙!’ ‘스타크래프트 속에 과학이 쏙쏙!’ ‘세계명작 속에 숨어있는 과학’ 등 과학의 대중화를 위한 글쓰기를 해온 그가 이번엔 과학과 광고의 관계에 눈을 돌렸다. ‘새빨간 과학’(살림)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기능성 화장품, 건강음료 등 과학으로 위장한 TV광고의 과장된 진실을 파헤친 것이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광고에 노출돼 있어요. 이들 광고는 과학으로 교묘히 위장해 사람들에게 물건을 사도록 하죠. 즉 과학을 사실, 그 이상으로 활용해 과학적으로 보이도록 합니다. 결국 현란한 이미지와 자극적인 문구 때문에 사람들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화장품 광고를 보면 미백효과가 탁월한 비타민C라든가 주름을 개선하기 위한 레티놀TX, 피부톤과 탄력을 위해 코엔자임 Q10을 써야 한다는 식의 표현이 많다. 정말 이런 성분이 들어있는 화장품을 바르면 피부가 좋아질까. 저자는 화장품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각질층, 투명층, 과립층, 유극층, 지저층 등으로 이뤄진 피부를 먼저 설명하고 비타민C 등의 성분들이 좋은 영양소이긴 하지만 광고와 같은 극적인 효과를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화장품 안에 평균 15∼20종의 화학물질이 더 들어있어서 피부에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외에도 미네랄 음료, 우유, 한우·돼지고기, 원자력 등 다양한 광고를 통해 그 안에 숨어있는 과학을 설명한다.

“사람들의 감성에 소구하는 광고를 과학의 눈으로 다시 보자는 겁니다. 화장품의 경우 유명 브랜드나 모델이 누구인지 보지 말고, 그 안에 든 성분이 어떤 것인지 또 성분에 대비해 가격이 합리적인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학시절 개그 콘테스트에 도전할 만큼 웃음 제조기로 유명했고, 군대에선 ‘우정의 무대’에서 끼를 뽐내기도 했다는 그는 교단에 서는 지금도 ‘웃기는 놈’으로 불리는 것이 좋다. 신바람 나는 과학을 설파하다 보니 그에게 붙은 별명은 ‘과학 엔터테이너’다.

“이제는 교사라 아무도 ‘웃기는 놈’이라 부르지 않지만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 역시 ‘선생님 수업은 진짜 재밌어요!’라는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 일상과 과학을 접목한 글쓰기를 시작하게 됐구요. 다음 번엔 우리가 매일 보는 드라마와 과학의 관계에 대해 써보려구요.” 국민일보 쿠키뉴스장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