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가치들이 요즘 들어서 점차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 결혼이 필수적으로 거쳐가야 할 과정으로 여겨졌다면 현재는 결혼을 선택의 문제로 바라보기도 하며, 또한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들도 다수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 변화는 사회의 변화에 발맞춰 일어나게 되는 것으로, 본래는 사회에서 ‘옳다’고 여기던 가치들이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의 가치들이 소멸해나가는 셈이다. 이러한 가치의 소멸과 재생산을 지켜보는 사회의 구성원은 당혹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멸세계>의 배경 또한 독자들이 처음 읽었을 때에는 다소 당혹스러운 설정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교미를 통해서 아이를 낳는 것은 구시대적인 풍습으로 여겨지며, 아이는 인공수정을 통해서만 낳게 된다. 개인적인 욕구 해소는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의 굿즈를 통해서 이루어지며, 부부간의 접촉은 근친상간으로 여겨지며 금기시된다. 우리의 시각에서 ‘비정상’적으로 느껴지는 이러한 설정들은 소설 내에서는 아주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한 세계에서 교미를 통해서 태어난 주인공 아마네는 여러 가족의 형태를 겪어오면서, 자신의 어머니가 추구했던 이념과는 정반대인, 그 사회에 있어서 지극히 정상적인 이데올로기를 따라가고자 노력하게 된다.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부부가 관계하는 걸 두고서 근친상간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세상이 올 줄이야. 옛날에는 오누이끼리 결혼도 했어.”
“누가 몰라?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 말의 의미도 바뀌는 거야. 우리 상식도 이미 오래전에 바뀌었다고. 국어사전을 펼쳐서 근친상간이 무슨 뜻인지 찾아봐. ‘남편과 부인 등, 가족 간에 성관계를 맺는 일’이라고 씌어 있으니까.” (...)
“나에겐....... 그게 ‘본능’이었어. 아무리 네가 더럽다고 해도, 엄마는 그 본능을 따랐을 뿐이야.” (p.156-157)
구시대적인 본능을 따랐던 어머니와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딸 아마네의 대화를 통해 독자가 생각하던 ‘정상’적인 것들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소멸세계>에서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 만나는 것이 질타받을 일이 아니며, 오히려 남편과의 성관계는 근친상간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아마네는 남편을 따라 ‘에덴’이라 불리는 인공 도시로 이사하지만, 끝내는 자신 또한 그러한 낙원에 반하는 짓을 저지르고야 말게 된다.
현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비극들에 비추어 보자면, <소멸세계>에서 등장하는 ‘에덴 도시’는 말 그대로 낙원에 가깝다. 누구 하나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당하지 않으며, 부모는 도시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의 부모가 된다. 개인이 겪는 양육의 아픔을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왔고, 그렇게 낙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점차 세계는 깨끗하게 바뀌어 나간다. 물론 이러한 설정이 인물 간의 대화에서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측면도 없지 않아 존재하지만, 그러한 직접적인 제시가 마치 자신이 ‘정상’임을 주장하기 위해 세상이 몸부림치는 것만 같아 하나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이 행한 행동은, 결국 자신이 태어난 배경을 향해 몸을 뻗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성향을 보여준다. 또한 옳다고 여겨졌던 에덴동산의 가치들이 또다시 무너져 내릴 것에 대한 암시로도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언제나 도중에 있다.’고 밝힌 작자의 말과 함께 이 소설은 독자에게 어느 정도의 불쾌감을 심어주면서 동시에 자신이 살고 있던 세계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게 해 준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옳다’고 여기던 가치관들이 어느 순간 소멸해나가는 요즈음이다. 결혼, 출산, 직업 그 모든 분야들에 대한 가치관이 한 차례 뒤바뀌고 새로운 가치관들이 들어차려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소멸세계>의 세계관은 우리 세계와도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 이 책은 마찬가지로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있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떤 것에 시선을 주어야 할지를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