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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전설 3-역사 전설 하편 (살림지식총서 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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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범 지음
| 2016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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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랜드 : 살림지식총서 |
| 쪽수 : 164 쪽 |
| 가격 : 4,800 원 |
| 책크기 : 120x190 |
| ISBN : 978-89-522-3371-4-040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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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섬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제주의 천하장사, 역사적 인물에는 누가 있었을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진한 감동을
우리의 이웃, 도깨비ㆍ호랑이ㆍ여우를 통해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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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신들이 등장하는 세상의 근원적 질서에 대한 이야기, ‘전설’은 비범한 인물이 등장하며 사실을 뛰어넘는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민담’은 평범한 인물들이 겪는 특이한 체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펴내는 ‘제주 전설’(전 5권)의 특징은, 우선 기존 민속학자나 작가에 의해 편찬된 제주도 전설 편편들을 총망라·집성했다는 점이다. 거기에다 그간 채록은 되었으나 현대어로 옮겨지지 않은 것들을 다수 포함하여 기존의 것들과 차별을 두었다.
또한 전설 분류에서 ‘제주장사 전설’ 항목을 따로 설정하여 제주민들의 소망과 한계의식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탐라국’의 계보를 ‘천지왕→설문대할망→삼신인’으로 연결하여 서사의 맥을 하나로 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맥락화는 이 책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이다. 그동안 서로 관계가 없거나 모순 관계였던 제주 신화의 ‘천지왕’과 제주 전설의 ‘설문대할망’, 그리고 제주 역사의 고(高)․양(梁)․부(夫) ‘3성씨(三姓氏)’를 한 줄로 연결한 이 계보는 신화와 전설 등을 통괄하여 ‘탐라의 대서사’를 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제주 전설 2』(30편)와 『제주 전설 3』(29편)에는 제주의 역사에 얽힌 전설을 모아놓았다. 그 가운데 『제주 전설 3』에는 충견․명견․명마에 관한 이야기와, 효부․효자․열녀 등 다른 지방의 전설과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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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4
우도 득성이코지·7|매고 무덤·9|움부리 설촌한 고혜한·15|강군택 하르방·17|자운당 한영장·20|괴 범 천총·23|삭달제장과 삼등매·33|허풍선이 이괄·39|가령 양 장의·44|현 유학·51|팔룡당과 팔사당·56|변 당장과 변만경 부자(父子)·60|홍리 오 서자·69|고성 홍 효자·73|충효 박계곤·78|명창 박 효자·80|천제연 효자·83|신촌 김댁 효부·89|열녀 정부인 김씨·92|현씨 부인·94|성읍 개 무덤·101|신선 고 장의의 개·106|신도 충견 무덤·109|명견과 산쟁이·116|영리한 말·123|해녀와 산호수·128|장두 이재수·135|왕이 될 뻔한 제주 사람 문사랑·145|제주 사람이 청나라 황제 되다·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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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가차 없이 처형하다가 이재수는 어떤 낯익은 사람을 알아보게 되었다. 그 사람은 무수천에서 신발장수 하는 이였다. 이재수는 전에 마부 노릇을 할 때 신발이 떨어져 한 켤레 사야 했던 적이 있었다. 신발 한 켤레에 서 푼 하였는데 이재수는 딱 두 푼밖에 없었다. 그때 그 무수천 신발장수가 한 푼 모자라지만 그냥 신고 가라고 덕을 베푼 일이 있었다. 그 사람을 보자 이재수는, “이 사람은 비록 성교꾼이지만 나쁜 짓 할 사람은 아니다” 하며 그 사람은 살려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재수를 의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때 죽은 숫자가 양편 모두 합해 700명에 이른다는데 대부분 교인이었다. 이 봉기를 두고 제주 민중들은 ‘이재수의 난’이라 했고, 천주교에서는 ‘신축교난’으로 이름하였다.
뒤늦게 프랑스제국의 아시아함대 두 척이 산지포에 닻을 내리고 시위했다. 민란은 곧 진압되고 이재수를 비롯한 세 장두는 압송되어 교수형에 처해졌다.
프랑스 공사 갈림덕(葛林德: 콜랭드 플랑시)은 파괴된 교당, 가구․집기, 사망한 마르셀 신부의 시동(侍童)의 휼금, 마르셀 신부의 뱃삯, 이자 등을 포함한 손해배상을 정부에 요구했고, 외무대신 박제순은 난민에게 책임이 있다고 떠밀었다. 새로 부임한 제주 목사 홍종우는 4만 525명의 도민에게 1인당 15전 6리씩을 골고루 부담시켰다.(『제주 전설 3』, pp.143~144)
“아, 제주에서 왔다면 너 배질할 줄은 아느냐?”
“배질이야 하구말굽쇼. 제가 본래 고기잡이하는 어부로 살았습니다마는…….”
“시방 우리나라에서 중국에 처녀 진상을 해야 하는데, 중국 갈 배를 잘 부릴 사람이 없어 못 가고 있느니라. 네가 배를 잘 부려서 중국에 한 번만 다녀오면 정승 판서 부럽지 않게 대우를 해줄 것인데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
“그래도 배질은 이제 그만……” 하면서 아들이 망설이는 기색이 있자 주인 대감은 더욱 적극적으로 권하였다.
“기왕 동냥질이나 해서 먹고사는 것인데 그보다야 낫지 않겠느냐?” 아들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게 나을 것도 같았다. (……)
아들은 진상하는 처녀들을 실은 배를 부리며 중국으로 향하였다. 중국 가는 게 며칠은 걸리는 일이어서 밤이면 밤마다 우망우망한 처녀들이 득실거리는 바람에 젊고 건강한 아들의 끼가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중 예쁜 처녀와 눈이 맞아 정을 통하게 되었다. (……) 그런데 배 안에서 정을 통했던 처녀는 황궁으로 들어가 궁녀가 되었는데, 그 미모 때문에 황제의 눈에 들어 황제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황제의 사랑을 받은 그 처녀는 곧 왕자를 낳았고, 마침 아들이 없던 황제는 매우 기뻐하며 즉시 세자로 삼았다. 이 세자가 바로 배 안에서 처녀와 정을 통한 아들의 씨였던 것이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황제가 죽자 이 세자가 황제의 위를 이었는데, 이는 결국 제주 사람이 청나라 황제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고기잡이 나갔다가 죽은 아버지 묏자리를 바닷속 용맥이라는 명당자리에 쓴 덕이라고 하였다.(『제주 전설 3』, pp.162~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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