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대여점의 출현으로 장기 침체에 빠진 소설시장에 [적시타] 가 터졌다. 양귀자의 장편 [천년의 사랑]（전２권·살림간）으로, 지난 ８월 출간된 이후 현재까지 50만부가 팔렸다.

올해 출간된 국내작가 소설중 10만부를 넘긴 작품이 드문 상태에서 처음으로 `50만부 고지`를 돌파했기에 단연 출판가의 화제다. `큰 사건이 터지면 소설은 안팔린다`는 출판가의 통설에도 불구하고, 소설만큼 흥미진진한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연일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는 요즘에도 [천년의 사랑]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교보문고 소설판매부 송수경씨（２９）는 `지난 달에 비해판매량이 ３０％ 정도 증가했다`며 `[입소문]이 난 것 같다`고 말했다. 도서 대여점에서도 [천년의 사랑]은 천세났다. 서울시 동작구 신대방２동 [눈빛도서대여점]의 박이숙씨는 `출간되자마자 손님들이 찾아서 갖다 놓았는데, 서가에 꽂힐 시간이 없다`고 했다.

[천년의 사랑]은 90년 `신명을 바쳐 쓴` 장편소설 [희망]이 독자들로부터 별 반응이 없자 열병을 얻어 입원했던 작가가 영안실이 보이는 병상에서 구상한 소설. 스토리는 무척이나 단순하다. 신분 차이로 사랑을 이루지 못한 두 남녀가 １천년뒤인 오늘날에 환생해 사랑을 나누지만 여인의 죽음으로 끝내 이루지 못한다는 게 줄거리.

환생한 여인（오인희）이 부모와 첫사랑에게서 버림받는 [신파조]의 얘기나, 도를 닦던 남자 주인공（성하상）이 여인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마다 말 그대로 [구름처럼 나타나 ] 도와주는 게 [양념]처럼 묘사된다.

전통 `소설문법`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비합리성과 우연이 점철된 <천년의 사랑>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이 책의 주독자층은 20대 이상의 여성들. 이들은 제목 자체가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아련하고 진실한 사랑의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것. 첫사랑에 배신당한 뒤 아이를 갖게 된 여주인공을 따스하게 거두고 그가 죽은 뒤 아이까지 맡는 남자 주인공의 헌신적 사랑이 여성 독자를 매료시키는 두 번째 이유.

３일 오후 교보문고에서이 책을 구입한 김은미양（숭의여고 ２년）은 "여선생님의 권유로 반 친구들 대부분이 [천년의 사랑]을 읽었는데, [남자주인공이 요즘 남자치고는 드물게 순수하고 아름답다]는 게 중평"이라 고 말했다. 최근의 복고적 사회분위기도 한몫 한다. 최근 문단의 직설적 성묘사에 대한 독자들의 식상함이 한 예다.

윤희영씨（２６）는 『몇몇 작가에게서 보이는 무절제한 성 묘사가 없어서 오히려 신선하고 읽기가 편했다』고 말했다. 『헌신적 사랑보다는 윤회와 전생을 소재로 한 내용이 더욱 눈길을 끌었다』고 지적한 독자도 있었다. 결국 지상에는 없을 것같은 헌신적 사랑을 그에 걸맞는 설화적상상력으로 풀어낸 데에 독자들이 녹아난 셈이다.

그런 점에서[천년의 사랑]은 우리의 설화를 현대화한 [설화소설]이라고 부를 법하다. 평론가 장경렬교수（서울대）도 `설화적 진리가 근엄한 이성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제 힘을 한껏 발휘한 생기넘치는 소설`이라고 평했다.
---조선일보 신형준 기자 (1995년 11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