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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의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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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치 앨봄 지음 | 이수경 옮김
| 2010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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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랜드 : 살림 |
| 쪽수 : 352 쪽 |
| 가격 : 12,000 원 |
| 책크기 : 129×189 |
| ISBN : 978-89-522-1363-1-038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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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독자가 사랑한『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이 13년 만에 전하는 감동 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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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또 하나의 감동 실화로 아마존과 「뉴욕 타임스」 1위 석권!
전 세계의 수많은 독자들을 감동시킨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Tuesday with Morrie)』은 스포츠 칼럼니스트이자 유명 방송인이었던 미치 앨봄(Mitch Albom)을 순식간에 베스트셀러 저자로 만든 작품이다. 앨봄은 루게릭병을 앓으며 삶의 끝자락에 서 있는 대학 때의 노은사 모리 슈워츠(Morrie Schwartz)와 인생에 대해 나누었던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아냄과 동시에, 출세와 성공만을 향해 달려왔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보다 진지한 시선으로 삶과 사람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 뒤로 앨봄은 소설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The Five People You Meet in Heaven)』과 『단 하루만 더(For One More Day)』를 펴내며 각박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가치와 소중함을 일깨워 왔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이후 13년 만에 그가 내놓은 감동 실화인 『8년의 동행(Have a Little Faith)』은 단숨에 아마존 베스트셀러와 「뉴욕 타임스」 1위에 오르며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지금도 그 열기는 계속되고 있다. 이 작품은 앨버트 루이스(Albert Lewis)라는, 모리 슈워츠에 이어 앨봄이 만난 또 하나의 인생 스승과 나눈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리 슈워츠가 앨봄에게 삶의 전환점을 만들어 준 존재라면, 앨버트 루이스는 그에게 삶의 보다 깊은 아름다움을 알려 준 존재다.
“내 추도사를 써 주겠나?”
작은 질문 하나에서 시작된 8년의 눈부신 여정
2000년의 어느 봄날, 강연을 마치고 나오던 앨봄은 자신이 어렸을 때 다녔던 유대교 회당의 랍비인 앨버트 루이스[앨봄은 그를 ‘렙(Reb.)’이라는 호칭으로 부른다]로부터 자신의 추도사를 써 주겠냐는 질문을 받는다. 평생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부탁을 받아 본 적이 없어 주저하던 그는 결국 몇 주 후 렙의 청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추도사를 쓰려면 우선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당신을 알아야 한다’며 만남을 제안한다. 그렇게 시작된 렙과 앨봄의 이야기는 8년 동안 이어진다.
처음에 앨봄은 렙과의 만남을 다소 불편하게 느낀다. 유대교 집안에서 자랐고 렙이 이끄는 회당에 다녔으며, 대학 시절까지 종교와 멀지 않은 삶을 살았던 그였지만 사회인이 된 후부터는 자연스레 그것에 등을 돌린 채 살아왔기 때문이다. 유명 칼럼니스트와 방송인인 그에게 종교는 필요하지 않았다. 신에게 간절히 요청할 것도 없었고, ‘내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삶을 살지 않는 한 신이 내게 요구하는 것도 많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렙은 평생 신의 존재를 믿고 신의 가르침을 받드는 성직자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었기에, 그와 나누어야 할 대화와 시간이 앨봄에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신, 믿음, 삶과 인간애에 대한 이야기를 렙과 함께하며 그의 생각은 조금씩 바뀐다. 그가 렙에게서 본 것은 위대한 종교인이나 독실한 신앙인이 아닌,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렙은 주변의 어려운 이웃이나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살펴 주었고,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임을 느끼게 해 주었으며, 유대교의 시각에서는 적으로 여겨지는 이들도 ‘가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아름다운 모습은 그가 가진 ‘믿음’의 힘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지금도 세상에서는 여러 크고 작은 싸움과 전쟁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 원인의 기저에는 ‘저들은 우리와 다르고, 그렇기에 공존할 수 없다’는 잘못된 생각이 있다. 하지만 길거리에 핀 이름 모를 꽃들도 틀에 맞춘 듯 서로 꼭 같기는 어려운데, 하물며 사람들은 얼마나 다르겠는가. 저마다 다른 얼굴만큼이나 생각들도 가지각색이고, 세상은 바로 그런 다양성 덕분에 더욱 다채롭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자. ‘나 혹은 우리와 다른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언제부턴가 뇌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 혹은 우리와 다른 것들은 모두 바꿔야 한다’고 여겨 왔던 것은 아닌지 말이다.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 종교적 믿음에 대한 의심, 믿음과 신념을 가진 이들을 향한 냉소적 눈초리……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던 앨봄은 ‘믿음’이라는 큰 줄기를 바탕으로 아름답고 따뜻한 삶을 살아가는 렙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기 시작한다. 그리고 렙의 장례식 날, 그와 함께한 동행의 기억과 더불어 그에게 고마움을 고백하는 추도사를 읊는다. 8년 전 렙과 했던 약속대로.
두 개의 다른 세상, 두 명의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한
크고 아름다운 하나의 세계
렙과의 만남을 이어 가던 중, 앨봄은 또 한 명의 인물을 만난다. 디트로이트의 낡고 허름한 교회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노숙자들을 보살피며 그들을 좀 더 나은 삶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는 흑인 목사 헨리 코빙턴(Henry Covington)이 바로 그였다.
헨리는 마약상이자 그 자신이 마약 중독자였던 사람이었다. 마약이 떨어진 어느 날 밤, 그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마약상들을 급습해서 마약을 빼앗고 그것에 취해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마약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바보 같은 짓을 저질렀음을 깨닫는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그 마약상들이 이내 앙갚음을 하러 들이닥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총을 손에 든 헨리는 그날 밤을 집 밖 쓰레기통 뒤에 숨어서 뜬눈으로 지새우며 신을 향해 마음속으로 계속 외쳤다. ‘제 삶을 당신에게 바치겠다고 약속하면, 오늘 밤 저를 살려 주시겠어요?’라고. 그날 밤, 헨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그의 인생은 다시 시작됐다.
앨봄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자선 단체의 지원금을 헨리의 교회에 쾌척해도 될지 판단하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그곳을 찾는다. 낡은 교회의 천장에는 큰 구멍이 뚫려 있고, 그곳으로 빗물이 떨어졌다. 추운 겨울의 한복판에서 가스 공급도 끊긴 채 비닐 천막으로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교회였지만,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헨리의 목소리는 신을 향한 감사와 앞으로의 삶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열정적인 헨리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던 것도 잠시, 앨봄은 그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 지원 여부를 망설인다. 사람이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 그리고 당시까지 여전히 갖고 있던 ‘믿음’에 대한 회의 때문이었다.
그러나 교회의 장로인 카스라는 인물로부터 앨봄은 헨리가 그간 소외받았던 사람들을 얼마나 진정으로 보듬기 위해 애썼는지, 헨리로 인해 새로운 삶을 찾은 사람들이 그에게 얼마나 감사함을 느끼는지, 그리고 그들 또한 헨리처럼 아직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 희망의 빛을 전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듣게 된다. 그들 또한 헨리를 ‘렙(Reb.)’이라고 부르며 따랐다는 사실도.
백인과 흑인, 유대교와 기독교, 오래전부터 고결한 성직자의 삶을 살았던 앨버트 루이스와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성직자의 길로 들어선 헨리 코빙턴. 두 사람은 피부색과 종교, 살아온 이력까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 둘은 놀라우리만큼 비슷하다. ‘믿음’이라는 등대가 비추는 불빛을 의지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점에서, 그리고 타인들의 삶도 그 빛으로 비춰 주며 이끈다는 점에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과 더불어
‘진정으로 아름다운 삶과 세상’을 이야기하는 미치 앨봄의 걸작
『8년의 동행』은 그렇게 겉으로는 달라 보이는 사람들과 세계가 결국은 하나의 큰 덩어리라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각박하기 그지없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믿음’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러나 이때의 ‘믿음’이 곧 특정 종교와 연관되는 것은 아니다. 앨봄이 말하는 것은 유대교든 가톨릭이든, 기독교든 불교든 상관없이 삶을 공고히 지탱해 줄 수 있는 그 ‘무언가’를 믿는 끈을 잡으라는 것, 그렇게 했을 때 삶과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워진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앨봄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등을 통해 이야기했던 ‘삶의 위대함’과 그 맥을 같이한다. 무신론자였지만 죽음을 앞두고 종교적 가르침을 파고들었던 모리 슈워츠는 “이 모든 것들을 전부 우연이라고 믿기에는 우주가 너무나 조화롭고 웅장하며 압도적이군.”이라 말했고,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에서 앨봄은 “우리는 모두가 저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들은 다시 그 옆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세상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결국은 모두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된다.”라고 했다. 그리고 이 두 작품들에서 얻은 깨달음을 종합이라도 하듯, 그는 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타인을 가족처럼 보듬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으니, 삶이란 너무나 위대한 여정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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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서문
프롤로그 _ 태초에……
제1부 봄
3월_ 도망치기의 유구한 전통 | 렙을 만나다 | 나의 성장기 | 헨리의 삶 | ‘하나님’ 파일 | 헨리의 삶 | 4월_ 평화의 집 | 헨리의 삶 | 믿음이 함께하는 일상 | 헨리의 삶 | 5월_ 의식 | 봄의 끝자락
제2부 여름
헨리의 삶 |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것 | 헨리의 삶 | 6월_ 이웃들 | 앨버트 루이스가 겪은 시간들 | 헨리의 삶 | 7월_ 가장 중요한 질문 | 헨리의 삶 | 8월_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 헨리의 삶 | 9월_ 행복 | 여름의 끝자락
제3부 가을
교회 | 9월_ 물질적 부 | 교회 | 10월_ 늙는다는 것 | 교회 | 결혼 | 헨리의 삶 | 11월_ 당신의 믿음, 나의 믿음 | 내가 발견한 것들 | 추수감사절 | 가을의 끝자락
제4부 겨울
동지(冬至) | 12월_ 선과 악 | 카스의 삶 | 용서 구하기 | 진실의 순간 | 1월_ 천국 | 교회 | 이별 | 추도사 | 그리고 남은 것
에필로그
감사의 말
옮긴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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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의 동행』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우리의 일상이 실은 기적과도 같은 값진 선물임을 일깨우는 따뜻한 메시지로 가득하다. 주인공인 렙과 헨리를 담담히 응시하는 작가 특유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죽음과 삶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믿음 속에서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은 곧 이미 좋은 이별을 준비하는 것과 같으며, 무심코 보낸 오늘 하루가 사실은 우리 삶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이해인(수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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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으로부터 8년 전, 나는 사랑하는 노스승인 모리 슈워츠(Morrie Schwartz)가 루게릭병으로 서서히 죽어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중략) 나는 앨버트 루이스-그는 우연찮게도 모리 교수님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다-가 더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리 교수님께 미처 물어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고, “시간이 조금만 더 있다면…….” 하며 가슴을 친 날도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중략)
그래서 나는 계속 렙을 찾아갔다. 우리는 많이 이야기하고 많이 웃었다. 옛날 설교들을 들춰 보며 그것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나는 렙에게 그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그가 귀를 기울이며 내 눈을 응시할 때면 온 세상이 멈춘 듯한 기분,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진심을 다해 경청하는 태도는 그가 성직자라는 일에 바치는 선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성직자라는 직업이 그에게 준 선물이었을지도. - pp.84~86
“과학이 결국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입증할 거라는 주장에 대한 내 의견은 다르네. 아무리 세포나 원자처럼 작은 부분까지 파고든다 해도, 항상 그 너머에는 인간이 결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남아 있지. 그 모든 것을 존재하게끔 만든 어떤 힘 말이야. (중략) 어느 시점에 이르면 삶은 끝나게 되어 있어. 그다음엔 뭐가 있을까? 생명이 다하면?”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내 말뜻 알겠나?”
그는 다시 의자 뒤로 등을 기대며 미소를 지었다.
“생명이 다하는 지점, 바로 거기에 신이 계신다네.” -pp.114~115
그렇다면 세상이 왜 이토록 복잡하게 분열되어 있는 걸까요? 내가 물었다.
“자, 이렇게 생각해 보게. 자넨 온 세상이, 온 세상 사람들이 전부 똑같았으면 좋겠나? 아닐걸. 삶의 진수(眞髓)는 바로 다양함에 있는 거야. 심지어 우리 유대교 내에서도 이런저런 질문과 대답들, 해석들, 논쟁들이 존재하잖나. 그건 기독교나 가톨릭, 또 다른 종교들에서도 마찬가지야. 그게 바로 아름다움일세.
음악가를 생각해 봐. 만일 음악가가 항상 같은 음만 연주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여러 가지 다양한 음조와 선율이 섞여야 비로소 음악이 만들어지는 거야.”
그래서 어떤 음악이 만들어질까요?
“나 자신보다 훨씬 커다란 어떤 존재를 믿는다는 음악.” -p.223
나는 내가 모르는 게 없는 똑똑한 놈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중략) 그래서 출세의 사다리를 더 높이 올라갈수록 아래를 내려다보며 바보 같고 우스워 보이는 것들을, 심지어 종교마저도 비웃었다.
하지만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깨달았다. 내가 남보다 훌륭한 인간이나 똑똑한 인간이 아니라, 그저 남보다 운이 조금 더 좋았던 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중략)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져도 우리는 막막한 공허감과 허탈감을 느낀다. 아무리 많은 학식을 쌓고,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이라 해도 괴로워한다. (중략) 그들은 아래를 내려다보는 대신 위를 올려다봐야 한다. (중략) 세상 모든 소음에서 등을 돌리고 자기 자신의 조용한 숨소리에만 귀를 기울여 보면, 우리는 누구나 똑같은 것을, 즉 위로와 사랑, 마음의 평화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pp.30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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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지 않은가?
네?
인생말이야?
추도사를 부탁한 렙이 미치에게 한 말이다.
인생이 아름답지 않느냐고?
내가 이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아니오’라고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인생이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는 것 같으니까.
분명 인생이 아름답고 했던 시절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기억에 없는 것 같다.
주어진 삶이라 마지못해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인생인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는 삶이 뭐가 아름답게 느껴지겠는가 말이다.
나는 어쩜 미치가 렙과 이별을 한 후 실체가 없다고 생각해 왔던 공험감의 실체를 느끼는 것처럼
나도 공허함의 실체를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던
‘8년의 동행’은 두 성직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유대교 랍비인 렙은 태어 날 때부터 성직자의 삶을 부여받은 것처럼 성직자의 정석인 삶을 살았고,
또 한 사람 개신교 목사인 헨리는 거친 삶 끝에 힘겹게 돌아돌아 성직자의 삶을 살고 있다.
이들에겐 있어 인생은 정말 아름답기만 했을까? 라고
시작된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은 정말 그들의 삶은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내 인생에 있어 신앙은 미치와 비슷한 것 같다.
물론 어릴 적부터 신앙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신앙을 가지고 성직자의 삶을 살겠다는 열망으로 신학교로 진학해 공부를 했으나
지금 현재 나는 처음 가진 그 신앙마저도 거부하고 있다.
하나님을 거부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신앙을 가진 이후로는 한번도 해 보지 못했던 생각을 지금 하고 있고,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곁을 떠나면 죽을 것만 같았는데 나는 지금 미치처럼 나에게 묻고 있다.
“신이 존재한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정말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일까? 지나온 시간들을 나는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나의 생각에 ‘8년의 동행’은 말을 걸어오고 있는 듯 하다.
"생명이 다하는 지점, 바로 거기에 신이 계신다네."라고 렙의 답에서
신이 존재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미치처럼
나 또한 '8년의 동행'을 통해서
종교에 대해,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을 가다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추도사를 써달라는 기막히고도 기발한 부탁으로 시작된 8년의 동행,
그리고 이들의 동행은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인생들에게도 생각의 영향을 미치게 하는게 아닌가 싶다.
우리편, 너희편이라고 편을 가르는 많은 종교들에게,
그리고 인생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신앙이란 행동의 문제라네. 얼마만큼 믿느냐 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느냐도 중요한 거야."라고
그리고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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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종교를 믿지 않는다. 그리고 난 종교, 특히 하나님을 믿는 종교를 싫어한다. 그 이유가 뭘까? 왜 난 종교를 믿지 않는 것을 넘어 특정 종교를 싫어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특정 종교의 배타성 때문이다. 난 미션 스쿨을 나왔다. 원해서 들어간 건 아니지만 난 매주 교목으로부터 종교수업을 들어야 했고 매주 강당에 모여 예배를 올려야 했다. 물론 수업에도 예배에도 난 충실하지 않았다. 강제로 강요받는 종교가 싫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목이란 인간 때문에 난 더욱 종교를 싫어하게 되었다. 처음 교목을 접했을 땐 난 교목이 종교를 초월한 훌륭한 사람인 줄 알았다. 대개 하나님을 신봉하는 종교인들은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기 마련인데 우리 교목은 그렇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교목은 우리와 첫 만남에서 분명 자기 입으로 자신은 불교를 비롯해 타 종교를 존중하고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학교가 미션스쿨이긴 하지만 종교에 대해 얼마든지 열려 있으니 굳이 기독교를 믿지 않아도 된다고까지 말했다.
그런데 한 달 조금 지났을 무렵 교목은 갑자기 기독교 이외의 종교를 믿는 사람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타 종교를 믿는 아이를 세워놓고 왜 그 종교를 믿느냐고 비난하고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필시 이건 종교재판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이 무슨 황당한 상황이란 말인가! 처음엔 자신은 타 종교를 존중하고 이해한다고 말해놓고 지금에 와서 다른 얘기를 지껄이다니 이게 무슨 타 종교를 존중하는 인간의 자세란 말인가! 불과 1달 전에 한 자신의 말을 망각해버려서 그런 것인지 아님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방심하게 해놓고 특정 종교를 믿는 아이들을 몰아붙이려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교목이 문제가 있었다는 점에는 반 친구 모두들이 의견을 모았다. 목사를 아버지를 둔 친구만 제외하곤 모두가 교목의 이중적인 태도에 혀를 내둘렀다. 이를 계기로 난 평소 강요적이고 배타적이라 꺼렸던 종교를 아주 싫어하게 되었다.
이 책은 종교가 배타적인 성향만 제거한다면 얼마든지 믿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책이다. 저자는 유대교 성직자였던 앨버트 루이스와 기독교 목사인 헨리 코빙턴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만 버린다면 종교로 인한 분쟁도 사라질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종교인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처음 이 책이 종교에 관한 서적인 것을 아는 순간 난 구매한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읽기를 망설였다. 종교에 관한 서적을 읽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종교 서적이 자신들의 종교가 옳고 타 종교는 그르다는 식의 주장만 펼치고 있어 읽는 것이 소모적인 시간낭비일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이 책을 쓴 저자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저자 미치 앨봄이란 점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전에 미치 앨봄이 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읽어봤기 때문이었다. 모리 교수님의 가르침은 가물가물하지만 좋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 떠올라 난 수차례의 망설임 끝에 <<8년의 동행>>을 읽었다.
역시 미치 앨봄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저자는 종교인들이 타 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만 철회한다면 얼마든지 서로를 이해할 수도 사랑할 수도 있음을 두 성직자를 통해 보여주었다. 성직자들이 만약 이 두 분 같은 생각을 하고 실천을 한다면 종교 분쟁은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종교의 존재 이유가 타 종교를 비난하고 타 종교인을 죽이는 것에 있지 않음을 이 책을 통해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 책은 총 4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도망치기의 유구한 전통’을 이야기한 부분이다. 여기서 저자는 “인간은 늘 신에게서 도망치려고 한다.”라고 주장한다. 난 왜 저자가 왜 이런 단정을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건 어디까지나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 아닌가? 종교를 믿지 않는, 아니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신에게서 도망칠 필요가 없다. 아예 신의 존재를 무시하고 인식하지 않고 사는 사람에게도 역시 신으로부터 도망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런데 인간이 늘 신에게서 도망치려 한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자신이 강요된 모태신앙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고 해서 마치 모든 인간이 신에게서 도망치려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뿐이다. 의미 있는 인생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고 잔잔한 감동까지 선사해주는 저자에게 있어서 이는 오점이 아닐 수 없다. 글을 쓸 때 좀 더 이러한 점을 주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물질적 부’에 관해 이야기한 부분이다. 여기서 저자는 랍비였던 앨버트 루이스가 자선기금을 모으는 것을 싫어했으며 성직자가 사람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일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는 점을 들려준다. 대부분의 종교 지도자들을 보면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 못지않게 헌금하라는 말을 셀 수도 없이 해단다. 교회가 커야 하나님이 좋아하신다고 주장하며 끊임없이 신도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과연 크고 화려한 교회에서 기도해야만 하나님이 신도들을 예뻐하고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인간을 비롯해서 세상 만물을 만들 능력을 지닌 창조주신데 왜 지상의 건물에 연연해하시겠는가! 그리고 하나님이 신의 세계에선 쓸모도 없는 돈이 좋아 자신에게 바치라고 하시겠는가! 돈은 성직자의 주머니를 채워주고 건물을 확장하는데 쓰일 뿐 하나님에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헌금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고 그들을 위해 건물을 지어준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우리가 흔히 보는 화려한 교회를 생각한다면 헌금을 요구하는 것은 그저 돈과 명예에 눈이 먼 성직자들이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위한 강요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앨버트 루이스처럼 자선기금을 모금하는 것도 싫어하고 사람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을 싫어하는 분도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모금하는 교회도 있다. 하지만 이는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드문 일이다. 헌금을 오로지 남들을 돕는 데만 썼다면 크고 화려한 교회 건물은 세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보면 진정한 종교인이자 하나님의 아들은 앨버트 루이스 같은 성직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종교 분쟁은 종교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인들의 태도에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성직자들이 열린 마음으로 타 종교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종교 분쟁은 일어날 수가 없다.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모든 종교인들에게 이 책을 읽길 강력히 권하는 바이다.
인상적인 글귀
“모든 종교는 사람들을 신에게 더 가까이 이끌어 주므로 어떤 종교도 다른 종교보다 우월하지 않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것을 믿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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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다 보면은 가끔은 쉽게 대답해줄수 없는 의문과 질문들이 있다,, 내 주변의 누군가에에 물어 보고 싶고 답을 듣고 싶은 질문들,,그러나 쉬원한 대답을 들을 수도 없고 그런 질문들을 쉽게 할수도 없다,, 나는 이책을 통해서 평소에 내가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들의 답을 보았다,, 한달에 약 20권가량의 책을 읽다보면은 대게 고만고만한 내용들과 재미들,, 가벼운 부담과 생각을 주는책도 있고 그리고 한두권정도는 책장에 고이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 꽂아두게 되는 책을 발견하게도 된다, 8년의 동행은 이전에 내가 읽고 책장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을 쓴 미치 앨봄(Mitch Albom)이 쓴 책이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로 잔잔한 감동을 줄까 기대가 많이 되었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 루게릭병을 앓으며 삶의 끝자락에 서 있는 대학 때의 노은사 모리 슈워츠(Morrie Schwartz)와 인생에 대해 나누었던 이야기라면은 이 책 <8년의 동행>은 자신이 어렸을 때 다녔던 유대교 회당의 랍비인 앨버트 루이스(앨봄은 그를 '렙(Reb.)'이라는 호칭으로 부른다)부터 자신의 추도사를 써 주겠냐는 부탁을 받으면서 8년동안 그들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느낀 것을 책으로 쓴 것이다, 어쩌면 인생의 선배들로 부터 듣는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미치는 추도사를 하는 사람을 위해서 어떻게 추도사를 한단 말인가?하는 고민을 하면서 죽은 뒤에 그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면 그에 대해서 좀더 알아야 겠다는 생각에 그를 주기적으로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유대교 랍비 렙을 떠나서 인간과 인간으로써 그의 삶과 가치관에 대해서 그리고 믿음과 사랑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미치가 궁금했던 질문들,.. 첫번째 질문,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십니까? 부터 시작을 해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시나요?? 왜 인간은 살인을 할까요??
신이 존재한다는 걸 어떻게 아세요??, 행복해지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사람들이 죽음을 앞에 두고 제일 두려워하는 게 뭘까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말이 정말일까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그토록 많은 악행을 저지를까요??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렙의 대답을 듣고 있노라면은 정말 내가 누구에게도 듣지 못했던 답을 시원스럽게 해 주어서 나의 가슴속의 의문들이 조금 풀려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에 인상 깊었던 질문과 내용을 옮겨본다,
"신이 존재한다는 걸 어떻게 아세요? 우리는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고, 체세포를 복재하며, 이목구비도 바꿀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수술로 성(性)을 바꾸기까지 하지요. 과학은 지구의 탄생에 관해 많은 것을 설명해 주고, 사람들은 탐사용 로켓을 쏘아 올려 우루를 탐험합니다. 태양은 더이상 신비로운 대상도 못돼요. 그리고 과거 사람들은 달을 경외의 대상으로 숭배했지만, 이제는 달의 암석 조각을 지구로 가져오는 세상이예요. 그렇지요? 그처러 한때 신비로운 불가사의였던 것들이 풀렸는데, 대체 누가 아직도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알라를, 어떤 초월적 절대자를 믿겠습니까? 이렇게 발절한 인류에겐 그런 존재를 믿는 게 더이상 어울리지 않는 일이 아닐까요?나무인형 피노키오 아시지요? 팔다리에 달린 줄이 없이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피노키오가, 제페토 할아버지를 예전과 똑같이 눈과 마음으로 바라볼수 있을까요??"
" 과학이 결국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입증할 거라는 주장에 대한 내 의견은 다르네, 아무리 세포나 원자처럼 작은 부분까지 파고든다 해도 항상 그너머에는 인간이 결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남아있지. 그 모든 것을 존재하게끔 만든 어떤 힘 말이야, 그리고 인간이 아무리 멀리까지 날아가고, 유전자를 자유자재로 다루며,이런 저런 세포를 복제하고, 생명을 연장해서 150살까지 산다고 해도 어느 시점에 이르면삶은 끝나게 되어 있어 그다음엔 뭐가 있을까? 생명이 다하면?" 생명이 다하는 지점, 바로 거기에 신이 계신다네." --------- 페이지 113~114
그리고 또 다른 한명의 목사의 삶도 계속해서 책에 등장하는데 디트로이트의 낡고 허름한 교회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노숙자들을 보살피며 그들을 좀 더 나은 삶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는 흑인 목사 헨리 코빙턴(Henry Covington)이다, 어릴적부터 헨리의 삶은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어릴적부터 쥐들과 함께 잠을 잤고 늘 쥐가 무서웠다. 어머니는 가정부였고 아버지는 마약상이였다 .헨리는 젊은시절 온갖 죄를 저질렀고, 10계명을 전부 어긴사람이였다.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때문에 감방살이를 했지만 출소하고 나서도 또 감옥에 가야할정도의 나쁜 짓을 한 그였였지만 인생의 후반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통해서 남들보다 훨씬 훌륭한 삶을 살고 있는 헨리,, 헨리와 렙은 살아온 삶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다,,그러나 미치는 이 두사람을 보면서 '믿음'이라는 불빛을 의지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점에서, 그리고 타인들을 돕고 사랑과 희생을 실천을 하고 살아가는 삶에서 두사람의 놀랍도록 닮은 점을 발견을 하게 된다,
렙은 행복의 비밀?은 만족할 줄 아는 것.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서 자신이 받은 사랑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것들에 대해서 감사할 줄 아는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신도들에게 마지막 남긴 말씀. " 부디 서로 사랑하십시오. 대화를 나누십시오.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 때문에 관계가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을 조용하게 가슴속에 담아본다,, 또다른 시간에 여러번 읽을때마다 또다른 깨우침으로 나에게 다가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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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추도사를 써 주겠나?'
누군가에게 추도사를 부탁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장례식장에서 추도문을 읽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추도사란 말 자체가 생소하다. 누군가의 추도사를 쓴다는 것은 그 사람은 기억한다는 것이다. 함께한 순간을 기억하고, 함께 나눈 대화를 기억하며 그 사람이 나의 삶에 의미 있는 존재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에 그 의미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저자인 미치 앨봄은 어릴 적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가게 된 유대교 예배당의 랍비인 엘버드 루이스의 부탁으로 그의 추도사를 쓰기 위해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고 이야기를 마무리하는데 8년의 시간이 걸린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저자는 렙에게서 종교 지도자의 모습이 아닌 인간적인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성직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책이지만, 그럼에도 종교와 무관하게 읽을 수 있는 이유는 담고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책에는 랍비인 엘버드 루이스와 목사인 헨리 코빙턴. 이렇게 두명의 성직자가 등장한다. 유대교와 개신교는 일반적으로 동일한 종교로 보기 어렵고, 두 성직자는 살아온 과정도 살아가는 과정도 너무나 다르지만, 우리에게 전해주는 이야기는 한가지. 바로 '믿음'에 관한 것이다. 믿음이란 종교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일생을 살아가며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그만큼 잃어버리기 쉬운 것 또한 바로 믿음이다.
삶과 자신에 대한 믿음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랍비와 과거의 삶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목사. 두 성직자의 삶을 통해 믿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불우한 어린시절을 겪으며 강도와 마약거래로 교도소 수감 등을 거친 후 목사의 길을 걸으며 노숙자를 위한 쉼터를 운영하는 헨리 목사는 그의 과거때문에 교회운영에 어려움을 겪는다. 사람들은 현재의 모습보다 그의 과거로 그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헨리를 판단한다. 외모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협함은 사람에 대한 믿음을 무너트린다.
"당신은 "과거의 나"를 알지요. 과거의 내 모습을 말입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과거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헨리목사의 한마디는 짫지만 강한 울림을 전해준다. 종교적인 내용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 지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종교를 믿어야 함을 강조하지 않는데, 자신의 신앙적 믿음으로 삶을 배타적으로 바라보는 모습들을 많이 보아서인지 그들의 믿음에 대한 유연적 태도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부디 서로 사랑하십시오. 대화를 나누십시오.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 때문에 관계가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랍비의 마지막 말을 한번 더 새겨보며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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