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죽음을 앞둔 노교수와 그의 제자가 나누는 인생에 대한 대화
졸업이 끝이 아니었다.
이 땅에 선택된 생명으로 태어나서, 평범한 일상 속에 갇혀 학교에 입학하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삶의 지혜를 배운다. 자연스럽게 시간을 흐름을 겪으며 품성을 쌓고, 관계를 형성하며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나아간다.
1주일에 한 번씩 진행되는 수업, 성적 평가는 없지만 구두시험이 수행된다. 화요일마다 이루어지는 수업은 교과서에서는 만날 수 없는 내용들이다. 사랑, 일, 공동체사회, 가족, 나이를 들면서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여러 감정에 대한 내용에서부터 성장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거치는 굵직한 일들인 결혼, 죽음 등등으로 논의 되는 주제들을 보면서 결코 흔하지 않은 인생수업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한다. 대학시절 모리교수의 전 강의를 수강했다는 제자 미치 앨봄, 졸업이 끝이 아니었던가? 그는 졸업식 후에도 화요일마다 모리교수의 강의를 듣는다. 루게릭병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에도 멈출 수 없었던 모리 교수님의 마지막 강의, 독특하게도 그 강의의 수강생은 단 한 명이었다. 생의 마지막 강의 그리고 아주 특별한 학생이었던 저자가 나누는 14번의 대화를 통해 인생이 대한 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마다 감동적이라는 찬사를 쏟아낸다. 인생을 이야기 하는 수많은 책들 중에서 특히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교수님의 어떤 점에 독자들이 이토록 반응 하는지 궁금했던 책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 루게릭병
60대의 모리교수는 천식이 심해져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차츰 걷는 것도 힘들 정도로 상태가 악화 되었는데, 알고 보니 루게릭병이라고 위축성 측색 경화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치료법이 없는 희귀한 병, 진단이 내려지면 치명적인 신경계통의 질환으로 결국은 사망에 이르는 병이다. 특히 춤을 좋아했던 모리교수에게는 더 할 수 없는 심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평소 좋아하는 것들을 잃고, 소중한 신체마저 조금씩 기능을 잃어 가는 것 말이다. 자신의 어두운 미래를 예측한 사람은 과연 어떤 말을 하며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일까? 죽음에 맞서 싸우던 모리교수, 절망이란 말을 애써 부인하였다. 그가 고통스런 순간에도 짤막짤막하게 남긴 말들은 “할 수 있는 일들과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음을 인정하라”, “과거를 부인하거나 버리지 말고 과거 그대로 받아 들여라”, “자신과 타인을 용서하는 법을 배워라”, 어떤 일을 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라“ 등등 이 말들을 보면서 누가 죽음을 직면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하겠는가? 다른 사람들이 모리교수와 같은 처지에 있었다면 현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自暴自棄하거나 충분히 고통스러웠을 것이지만, 모리교수는 70대 그 연세, 죽어가는 순간에도 열정을 간직했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루게릭병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다.
루게릭병(Lou Gehrig's Disease)은 근위축성 측색경화증 또는 운동신경원질환 등으로 불리는 병으로 운동신경세포가 퇴행성 변화에 의하여 점차 소실되어가다가 근력 약화와 근위축을 초래하는데, 언어장애, 사지위약, 급격한 체중감소, 폐렴 등의 증세를 보였다가 결국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질병이다. 루게릭병은 희귀난치병으로 인구10만 명당 대략 2-3명이 발병하는 질환으로, 특히 35∼50세의 남자에게서 많이 볼 수 있다.
마지막 남긴 메시지
“죽음은 생명을 끝내지만 관계까지 끝내는 건 아니다.” 는 이 책의 주인공인 모리 슈워츠 교수가 제자에게 남긴 말로 이 책을 읽는 전 세계 독자들에게 교훈과 감동을 선사해 준 말이다.
다음 날 모리교수의 하루 일과란 서재에 앉아 숨을 고르면서 죽음이 얼마만큼 가까워졌는지 가늠해 보는 일일 것이지만, 모리교수는 알 것이다. 다음날 아침 생명을 거두어가지 않고 호흡주신 것에 대한 소중함을. 그 외 한 가지가 더 있다면 졸업 후 연락을 하며 지내겠다던 제자를 기다리는 일일 것이다. 졸업 후 바쁜 일과에 끌려 다닌 제자에게 노교수의 존재는 이미 희미한 기억일 뿐이다. 마치 세상일에 쫓기며 자신들의 역할조차도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 정말 분주하고 바쁘다지만 무엇 때문에 바쁜지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는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어느 날 우연히 방송에서 스승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재회는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게 이어진 만남이 화요일마다 계속된다. 앞날이 구만리 같은 제자에게 노교수는 마지막까지 혼신을 다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그리고 의미를 전수한다. 지칠 대로 지친 모리교수의 특별한 제자인 미치 앨봄에게 그의 내면을 적셔주는 단비와 같은 메시지는 잃어버린 것들을 찾게 해 준다.
“그럼, 우린 화요일의 사람들이군.”
“화요일의 사람들이죠.”
나도 똑같이 말했다. 모리 교수님은 미소를 지었다.
“미치, 어떻게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걸리느냐고 물었지? 내가 이 병을 앓으며 배운 가장 큰 것을 말해 줄까?”
“그게 뭐죠?”
“사랑을 나눠 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그는 소곤거리는 것처럼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 p.92
학교가 아닌 곳에서 이루어진 참 교육
師弟三世라고 했다. 스승과 제자와의 인연은 전세·현세·내세에까지 계속된다는 말로, 그 관계가 매우 깊고 밀접하다는 뜻이다. 즉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다. 이 말이 주는 의미를 바로 알려주는 것이 바로 이 책에서 만난 師弟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참된 스승이란 지식적인 부분을 담당할 뿐 아니라 인생의 의미까지 깨우쳐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참 된 스승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고들 말을 한다. 교권을 내세우기 전에 제자에 대한 사랑을 먼저 기억해 주는 스승이 그립다. 물론 교육계를 위해서, 제자 양성을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을 다하시는 훌륭하신 분들이 많이 있겠지만 말이다. 자신의 위치를 소명으로 받고 맡겨진 제자들에 대한 인격을 최대한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 참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君師父一體라는 말을 미국의 문화권에서 발견할 줄이야. 미처 부모님이 해 주지 못한 가르침....... 이 책<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유를 이제야 비로소 알 수 있을 것 같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면 나는 죽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면, 나는 다시 태어난다. -마하트마 간디
“죽음은 생명을 끝내지만 관계까지 끝내는 건 아니다.” 이 말과 같이 오붓한 사제의 만남은 계속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화요일의 대화를 기억하면서 이제는 안식한 스승에게 드리는 특별한 제자의 思母曲이 이어지리라.
“묘비에 뭐라고 적으면 좋을지 결정했네.”
교수님이 말했다.
“묘비 얘기 같은 건 듣고 싶지 않아요.”
“왜, 마음이 초조해지나?”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그 얘긴 관두지 뭐.”
“아니에요. 말씀해 보세요. 뭐라고 쓰실 거예요?”
교수님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서 대답했다.
“이런 글귀를 생각했네. 마지막까지 스승이었던 이.”
그는 내가 그 말을 마음에 새길 때까지 기다렸다.
“마지막까지 스승이었던 이.”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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